경인일보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희생장병 영결식, 22사단장으로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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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근무중이던 부소초장이 급히 소초로 복귀하여 귀순 경위 및 경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귀순자가 요깃거리를 요구하자 당시 후반야 분대장의 관물대에 있던 크라운산도 크림맛을 꺼내주었고 그것을 처음 보는 귀순자는 포장 개봉법을 몰라 가위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사고로 내무반에서 잠자던 사병들이 수류탄 파편과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특히 북으로 도주하던 조 일병을 뒤쫓던 13전초중대 수색대원들도 발목 지뢰를 밟거나 신병의 오발사고로 인해 현장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추가로 발생했다

노크귀순이 터지고 얼마뒤에 해당 연대의 수색중대에서 연대장이 방문해서 철책을 넘어보라고 했더니 한 병사가 몇초만에 넘어서 연대장 포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추적조가 물러가고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후일담으로 기무사에서 조사과정중에 넘어온 북한병사에게 라면 4개를 끓여주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국물까지 싹싹비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날 기무대로 들어간 치킨 2+1은 누가 먹은걸까?

헌병대 사단 영창과 헌병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습하기 그지없는 본부대 보다는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한 때 영창 보수공사 관계로 사단에서 발생한 영창 입소자들은 군단 헌병대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수상한 배가 아니라면 왜 묻었는데? 무엇보다 설령 이게 간첩선이 아니더라도 규정상 이걸 상부에 보고할 책임이 있던 대대장을 비롯한 이 일에 관련된 책임자들의 문책에 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었다

초기접보시에는 북측의 강습으로 판단했으나, 해당 GP 소속 상황병인 조준희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M-16 총기를 난사한 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것이었으며 사건 바로 다음 날 조 일병의 대남월북권유 방송을 통해 조 일병의 월북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2 거진은 사리원과 비슷한 위도에 있고, 통일전망대는 남포, 송림과 비슷한 위도에 있다

이후 2012년 경 경계여단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사단이 이동하거나 전환 혹은 해체까지 별의별 말이 나온 상태였고, 심지어 영월로 이동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본부근무대 사령부 내부에 있으나 건물이 매우 작다. 건물도 오래되고 보수도 잘 안되어 안습한 생활환경을 자랑한다

8군단 소속으로 부대의 별명은 율곡부대. 창설 당시의 별명은 뇌종레종부대였으나 2003년 변경되었다. 율곡 선생의 고향과 같은 영동 지방을 책임지는 부대라는 이유와 유비무환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 결정적으로 율곡 선생의 이름과 사단명이 같은 것이 주효했다

해안감시장비운용대 군생활 내내 해도 만나기 쉽지 않은 부대이다. TOD와 같은 감시장비를 운용하는데 다른부대의 훈련에도 참여하기도 한다. 2년간의 페바 군생활 중 딱 1명의 운용대원을 봤을 정도로 꽤나 희귀하지만 전방에 올라가면 매일 같이 본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의 육군 제 22 사단 신병교육대대는 체계적인 전투훈련과 VIHAP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 . 이곳에서 교육훈련을 받은 장병들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을 제압하며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적의 용사로 거듭난다

해안쪽은 여름에도 8월이 넘어가면 꽤 춥다. 야전상의를 못 입게 하기 때문에 안에 내복을 입고 위에 전투복을 입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 비까지 오면 진짜 추운 밤이 된다. 덕분에 낮에는 생각보다 덥진 않다

1 원산 이남 동해안은 온난 습윤 기후, 즉 온대기후에 속한다

어떤 경우 아예 안하는 경우도 있어서 간부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단, 화장실 등은 리모델링하여 깔끔하다. 또한 생활교육내용과 현실이 달라서 신병교육대는 잘 못 들었습니다로 가르치는 반면 55연대는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해야한다

22사단 임병장총기난사 사건이 지난지 별로안된지금. 22사단에서 화장실에 목매단채 자살을한 이등병이 발견되었다고합니다. 이등병은 입대한지 3개월만에 자살한걸로 알려져있는데요. 대체 22사단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지는걸까요. 정확한조사와 조치가 필요할것같습니다

만일 폐쇄했다면 8군단이나 1군사령부, 육군본부에서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이 글 작성해주신분 감사합니다. 위에 문일병입니다. 그때 당시 제 동기였고요. 이 사건외 여러사건 많습니다

정말 사단장들의 무덤이 된 22사단 사건 사고가 났다고 하면 큰 사건 이정도 되면 22사단 군기강은 완전 개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전방투입이 마무리되고 어느정도 각 부대간 신병배분이 재조정되면서 해결되지만 그때까지 취사분대는 정말 적은 인원으로 죽기 직전까지 일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래도 직할대중에서도 가장 연대 소속과 갈등이 많은편일것이다. 유격장에서 제일 가까운 부대이다 보니 치중대가 수색대대 시설을 빌려서 사용하는데 그로 인한 문제. 마찰이 심해지면 훈련부대 취사병과 수색대대 취사병이 대판 싸우는 일도 발생한다

전차대대 제1야전군 예하 전방부대 답게 M48A5K2 전차로 무장하고 있다. 고성군에서 전차대대가 유명한 이유로는 학야리에 위치한 전차포 사격장 이전문제로 고성군민과 국방부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타부대의 경우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는데, 주구장창 인트라넷에서 홍보하긴 했었다

최근 몇년간 다시 경계 여단으로 바뀐다는 소문이 돌고있다고 하는데 정확히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2011년 1/4분기를 기점으로 인접 군단 및 예하 사단,22사단 및 8군단 관계자 간에 약식 토론을 수차례 진행 하였으나 별 다른 성과가 없이 끝이난 적이 있었다

후일담으로 사건 당시 55연대 및 56연대 병력 대부분이 훈련은 죄다 때려치고 전방 철책 보수, 시야확보를 위한 불모지 작업을 하러 11월12월에 9XX고지 언 땅에 텐트를 치고 혹사당하며 굴려졌다.월북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56연대 관할로, 내륙 9소초10소초 구간이다

안녕하세요 바비입니다. 김포미용학원 에르모소 오늘의 핫이슈는 22사단 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보수공사병력과 순찰병력이 동숙을 하면서 40명 정원의 막사14에 200명 이상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추운 계절에 난방도 되지 않는 바닥에서 칼잠을 자야했던 것은 둘째치고, 생활용수가 극도로 부족했다

4 이번에 총기난사가 일어난 지역은 쌍호연대 소속이지만 도주후 교전지역이나 생포지역은 금강산연대 관할지역이다

바로 윗 항목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 노크 귀순 사건이라고도 한다

신지후포스트맨 가수 2016년 7월 현재 군복무 중이다

실제 작전 참여자의 증언에 따르면 모두 성공한 작전은 아니다. 만일 1년전 민간인 월북사건이 없었다면 유공보다 징계가 더 많았을 것이나 부대 이미지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포상위주로 이루어졌다

수색대대 송중기가 갔다온 그곳이다. 지금은 수색병을 병무청에서 따로 뽑지만 불과 2011년 이전까지는 신병교육대에서 선발했다. 그때 당시에는 전방시설 위주로 홍보하여 모두가 신막사에 낚였다

화학지원대 원래 공병대대가 사용하던 부지에 커다란 통합막사를 구축하여 정보통신대대와 함께 사용 중이다. 자체적으로 NBCRV를 운용하나 주행교육 및 정비를 할 곳이 마땅치않아 바로 근처의 전차대대에 의탁하여 정비 및 교육을 실시한다

년 1월 26일, 형 모 일병이 부대 내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다. 해당 사건은 포상 휴가 복귀 당일 일어났으며 얼굴 여러 곳에 상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폭행과 가혹행위가 의심되고 있다

특기할 점으로는 55연대 3대대는 2007년 과학화훈련 당시 3참호에 진입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2010년 7월간에 실시한 훈련에서는 2참호에 진입하기 전에 타임아웃되었다

사건의 규모나 파급효과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최악의 총기사고로 기록될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다고 볼 수 있지만 5공 정권하에서 보도가 통제되는 바람에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 군 사고로 처리되어 피해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 작업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무릎연골이 닳아 의병제대 판정을 받은 병사까지 있었다. 해당 병사가 체중이 많은 편이라 산악지대에서의 작업에 무리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지나치게 가혹한 작업량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신병교육대대 신병교육대대로 각 1,2,3,4,5중대로 구성되어있다. 시설은 2014년 기준 4중대가 제일 후지다물이 없어서 대변을 옆 중대에서 해결할 정도였던 적도 있으니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육군 제 22 사단 신병교육대대는 1985 년 10 월 강원도 고성의 제 56 연대 4 대대로 창설된 후 몇 차례의 소속 변경을 거쳐 1998 년 9 월 사단 직할대로 예속 전환되었다 . 2002 년 6 월 신병교육대에서 신병교육대대로 증편돼 오늘에 이른다

이 쯤 되면, 철책에 자동문이 설치됐나 의심해야 할 판. 귀순자였기에 망정이지 무장한 특수부대였으면? 흠좀무. 게다가 상부에는 허위보고가 들어갔다고. 게다가 밝혀지기로는 처음에는 동해선 경비대를 노크했으나 응답이 없어 근처의 내륙 소초로 갔다고 한다

위 후일담을 보다 정확하게 보충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해당 순찰섹터를 담당하고 있던 대대병력이 통째로 갈려나감에 따라 FEBA로 철수했던 대대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10월 한 달간 순찰에 투입했는데, 같은 시기 이미 보수공사에 투입되어있던 병력12이 있었다

이후 사후강평에서 과학화훈련단장은 55연대 3대대가 본부중대까지 투입한 과감함은 인정하나 지휘부 경비를 포기한 점에선 너무 위험했으며 적절한 급양지원을 계속해서 유지한 점은 귀감이 될만하다.고 하였다

본 위키니트도 이게 입에 붙는 데 시간이 걸려 고생을 하였다. 짧으면 짧다고 갈구고 발음이 부정확하다 갈구고 갈굼의 주재료로 충분했다.물론 짬좀 되면 저게 극단적으로 줄이고 빨리 말하는 것을 얼핏 옆에서 듣게 되면 다시마스까? 로 들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본 항목의 부소초장이 위 항목이 일어났을 때 전투분대장이었다. 그 말은 즉, 두 사건이 같은 소초에서 일어났다는 뜻. 실제로 본 소초에 사건, 사고 사례가 많다

이전까지는 부대의 고유명칭을 작성하지 말라고 했으나 22사단의 경우 이미 뉴스 등을 통해서 부대편성이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매체나 지휘관 취임 및 이임식 행사 등으로 언론에서의 고유명칭 노출이 일상화된 바 군사기밀을 보호하는 선에서 고유명칭을 기재하고자 한다

제5공화국 당시에는 대학 교수의 울며 겨자먹기식 승인하에 운동권 대학생을 강제 입대시키는 지도휴학 제도가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가 학생운동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주도한 일명 녹화사업으로 이는 역사 드라마 제5공화국 이나 삼김시대에서도 묘사된다

55연대일명 쌍호연대 내륙 GOP를 맡고 있다. 다른 두 연대와 달리 산악지역을 맡고 있어서 소초간 책임 구역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무릎 나가는 건 별 차이 없다 원래 현재 책임구간보다 더 짧았으나 조금씩 넓어져서 지금의 구역 처럼 되었다

이 쯤 되면 북한군이 그동안 이쪽으로 무력도발 안해준 게 다행일 정도다

최전방 부대로 강제 배치된 조준희 일병의 범행 및 월북 동기는 여러가지로 조사되었지만 제5공화국 출범기였던 1984년 당시의 정치상황과 연계된 자생 공산주의자라는 설과 군대 내의 폭력 문화의 비극이란 설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동해선 경비대는 56연대 GOP 내륙 1소초와 바로 붙어있다. 노크 귀순 당시 귀순자가 동해선 경비대를 먼저 노크했지만, 워낙 꿀이 흐르는 부대이다보니 불침번도 없이 자고 있었고 귀순자는 옆에 있는 내륙 1소초로 와서 귀순하였다

후일담으로 대남방송 나오고 철책 정밀검사로 뚫린 곳이 발견되었을때 당시 8군단장이 헬기타고 급하게 와서 아.뚫렸구나.라고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육군 22사단 소속 병사가 투신해 숨졌다고합니다. 알고보니,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정말 22사 군기강 개판이네요. 이래서 누가 22사단을 가려하겠습니까? 내자식이 22사단 발령받았다고 하면? 보내시겠습니까?

귀순자 유도는 초병들의 발견으로부터 해서 잘 이루어졌으나, 조명지원까지는 완벽했는데 추적조 소탕에는 실패하였다. 중대병력이 개인화기K-1, K-2와 공용화기K-3, K-4, K-6를 갈겼으나 한명도 사살하지 못했다고 한다

5중대는 분대장 교육생들이 사용하며, 본부중대 인원도 같이 생활한다. 경우에 따라서 주특기 교육을 받는 인원들K3 , 60mm , 81mm , 4.2박격포이 주말동안 대기할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 조교가 PX에 데려다 주는 경우도 있다

각 연대 및 직할대들은 삼각형 모양의 비표를 사용하였으나 2011년 부로 비표 사용을 폐지 하였다

22사단.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아까운 목숨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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