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성지순례방학기간에만 순례가능한 성지 옛 용산신학교 성당&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게 되었다가 1945년 경성 천주공교 신학교로 개칭, 다시 설립되고 그 후 성신대학이라는 명칭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입구 수위아저씨께 말하면 도장을 찍어주신다
그리스도적 생활을 완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전인교육에 주력하고 있는 명실 상부한 국내 최고의 신학대학이라 소개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효시는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교사들은 정하상을 비롯한 소년들에게 국내에서 신학 교육을 시키는 한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중 김대건과 최양업만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해 활동하다가 순교했던 것이다
정문에서 업무보시는 분께 성지순례 왔음을 말씀드리니 인적사항을 적으신 후 방문증과 성당 내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시며 사진촬영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전철역으로 가던 중에 담벼락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만났어요
걸어서 올라가는데 나무숲이라 시원하니 좋다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역동적입니다
구정 연휴의 끝자락. 오랜만에 천주교 성지를 찾아 나선다
신학교육을 시키는 한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는데 김대건과 최양업만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였다
구정 연휴 마지막 날 딱히 할 일은 없고 미루던 천주교 성지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사제 양성이 목표인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1994년 2월 24일부터 안치하여 공경하고 있다
운동장은 관리가 잘되어 운동하기에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 것 같아요
제천 베론성지에 첫 신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친절한 안내와 더불어 성당 외에 다른 곳은 가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함께 전하신다
가르쳐준대로 성당쪽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언덕길로 올라가니 성신 교정 정문이 보입니다
조심스럽게 반문을 해보는데. 성지 순례도 안됩니까?
신학생들을 위한 기도문이 있어서 찍었다
조용하게만 느껴지는 교정을 들어서자 마리아 상이 먼저 반기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현 가톨릭 신학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예수성심학교가 문을 열어 최초로 국내 신학교의 설립을 보게 된다
뒤편에 조용히 앉아 주모경을 바친 뒤 사진촬영 하며 제대 앞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유해 앞에서 묵상을 합니다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겠다는 신학도들이 공부하는 곳이라 방학에만 공개를 하고 있는 곳이다
가톨릭 대학교 성신 교정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토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다
캠퍼스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는 때는 내가 갔던 특별한 행사 혹은 매년 5월에 있는 성소주일때뿐이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다
성신대학이라는 명칭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제를 양성하는 교육과 생활의 공동체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무사히 성지순례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학기간에만 방문이 가능하다는 블로그를 보고 방하기간내에 서둘러 방문하였습니다
본디 신학교는 용산성심학교 현 성심여고에 위치해있었으나 혜화로 옮기게된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성당 건물 오른쪽에는 성 김대건 신부상이 있습니다
엶으로써 최초로 국내 신학교의 설립을 보게 된다
비석에 있는 신학생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내려왔습니다
연구 습득케 하여 교회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방문증을 반납하니 스탬프를 찍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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